정중지와(井中之蛙)조강지처(糟糠之妻)조명시리(朝名市利)
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中:가운데 중. 之:갈 지(…의). 蛙:개구리 와.
[원말] 정중와 부지대해(井中蛙不知大海). [준말] 정와(井蛙).
[동의어] 정와(井蛙), 정중와(井中蛙), 정저와(井底蛙), 감정지와(坎井之蛙).
[유사어] 촉견폐일(蜀犬吠日), 월견폐설(越犬吠雪).
[참조] 망양지탄(望洋之嘆), 득롱망촉(得隴望蜀).
[출전]《後漢書》〈馬援專〉,《莊子》〈秋水篇〉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① 왕망(王莽)이 전한(前漢)을 멸하고 세운 신(新)나라 말경, 마원(馬援)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 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隴西:감숙성(甘肅省)]에 웅거하는 외효(隗囂)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公孫述)은 촉(蜀) 땅에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순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雌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 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後漢)의 시조가 된 광무제(光武帝:25~27)와 수호(修好)하게 되었다.
② ‘정중지와’란 말은《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북해(北海)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황하(黃河)의 하신(河神)인 하백(河伯)에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하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 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道)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강지처(糟糠之妻)
糟:술재강 조. 糠:겨 강. 之:갈 지(…의). 妻:아내 처.
[원말]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출전]《後漢書》〈宋弘專〉
술재강과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
전한(前漢)을 찬탈한 왕망(王莽)을 멸하고 유씨(劉氏) 천하를 재흥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일이다. 건원(建元) 2년(26), 당시 감찰(監察)을 맡아보던 대사공(大司空:御史大夫) 송홍(宋弘)은 온후한 사람이었으나 간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느 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를 불러 신하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 결과 호양 공주는 당당한 풍채와 덕성을 지닌 송홍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광무제는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런 질문을 했다.
“흔히들 고귀해지면 (천할 때의)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가난할 때의)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소?”
그러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며[貧賤之交 不可忘], 술재강과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糟糠之妻 不下堂]’고 들었사온데 이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되나이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와 호양 공주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조명시리(朝名市利)
朝:아침‧조정 조. 名:이름‧이름날 명. 市:저자 시. 利:이로울 리.
[유사어] 적시적지(適時適地). [참조] 일거양득(一擧兩得).
[출전]《戰國策》〈秦策〉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市場]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는 말.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 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는 어전에서 ‘촉(蜀)의 오랑캐를 정벌하면 국토도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도 쌓일 것이므로,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며 촉으로의 출병을 주장했다.
그러나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재상 장의(張儀)는 그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진나라는 우선 위(魏)‧초(楚)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한(韓)나라의 삼천(三川) 지방으로 출병한 후 천하의 종실인 주(周)나라의 외곽을 위협하면, 주나라는 스스로 구정[九鼎: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보물]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그 보물을 내놓을 것이옵니다. 그때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나이까? 이것이 패업(霸業)이라는 것이옵니다. 그까짓 변경의 촉을 정벌해 봤자 군사와 백성을 피폐(疲弊)케 할 뿐 무슨 명리(名利)가 있겠나이까?
신(臣)이 듣기로는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에서 다툰다[朝名市利]’고 하옵니다. 지금 삼천 지방은 천하의 저자이옵고 주나라 황실(皇室)은 천하의 조정이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이것을 다투려 하지 않고 하찮은 오랑캐의 촉을 다투려 하시옵니다. 혹, 패업을 멀리하시려는 것은 아니옵나이까?”
그러나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주] 장의 :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위(魏)나라 사람. 합종책(合縱策)으로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과 함께 수수께끼의 종횡가인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 종횡의 술책을 배움.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임을 받아 진나라의 재상이 됨. 소진이 제(齊)나라에서 살해되자(B.C. 317) 6국을 순방, 유세(遊說)하여 소진의 합종책을 깨고 연횡책(連◈策)을 성사시켜 6국으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섬기게 함. 혜문왕이 죽은 후 참소(讒訴)를 당하여 위나라에서 객사(客死)함. (?~B.C.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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