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안내: Contents 학습안내: Contents
2.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공부하기1
3. 지방유형문화재와지방무형문화재공부하기2
4.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공부하기3
5. 내용정리마무리하기6. 탐구학습심화학습1. 학습목표확인생각열기7. 형성평가문제풀기8. 예습할내용차시예고
학습목표: 김제의문화재학습목표: 김제의문화재
김제의
문화재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할
수
있다
.
김제의문화재를구분하여설명할수있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1/6
.벽골제.지정번호: 사적제111호.소재지: 김제시부량면월승리.시대: 백제시대.지정일: 1963 년1월21일.벽골제는우리나라에서가장오래된저수지로써<삼국사기>에의하면서기330년(백제비류왕27년)에축조된것으로기록되어있다. 벽골제는제방의길이만3.4Km, 관개면적이1만ha에달하고,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로불리는수문이5개가있었다. 지금은일제시대에둑의한가운데를파서수로를만들었기때문에둑이두개로갈라지고수문도3개가사라지고장생거와경장거만남아있는상태이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1/6
.벽골제.지정번호: 사적제111호.소재지: 김제시부량면월승리.시대: 백제시대.지정일: 1963 년1월21일.벽골제는우리나라에서가장오래된저수지로써<삼국사기>에의하면서기330년(백제비류왕27년)에축조된것으로기록되어있다. 벽골제는제방의길이만3.4Km, 관개면적이1만ha에달하고, 수여거,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로불리는수문이5개가있었다. 지금은일제시대에둑의한가운데를파서수로를만들었기때문에둑이두개로갈라지고수문도3개가사라지고장생거와경장거만남아있는상태이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2/6
.봉남동령마을느티나무.지정번호: 천연기념물제280호.소재지: 김제시봉남면행촌리동령마을.규격양식: 높이20m, 둘레10m
.소유지: 동령마을.지정일: 1982 년11월3일.동령마을의북쪽끝에서있는이느티나무는수령이약500년으로추정되며, 나무가차지하는면적이무려425㎡나되며, 지면으로부터4m 높이에4갈래로가지가나누어져있는데,그중북서쪽의가지는몇년전에어린이들의불장난으로안타깝게도불타없어졌다.
.마을사람들사이에는이나무의잎이푸르고넓게피면그해에풍년이들고반대로잎의모양이좋지않으면흉년이든다고하며, 또이나무바로옆에속칭'칠성바위'로불리우는여러개의바위가있는데, 그바위의높이가조금만더높았더라면이마을에서역적이날뻔했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
.마을사람들은이느티나무가마을을수호해주는당산나무라하여정성껏아끼고있으며,
매년음력정월초3일오시에이나무에동아줄을감아놓고그해의평안과소원성취를비는당산제를지내고있다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2/6
.봉남동령마을느티나무.지정번호: 천연기념물제280호.소재지: 김제시봉남면행촌리동령마을.규격양식: 높이20m, 둘레10m
.소유지: 동령마을.지정일: 1982 년11월3일.동령마을의북쪽끝에서있는이느티나무는수령이약500년으로추정되며, 나무가차지하는면적이무려425㎡나되며, 지면으로부터4m 높이에4갈래로가지가나누어져있는데,그중북서쪽의가지는몇년전에어린이들의불장난으로안타깝게도불타없어졌다.
.마을사람들사이에는이나무의잎이푸르고넓게피면그해에풍년이들고반대로잎의모양이좋지않으면흉년이든다고하며, 또이나무바로옆에속칭'칠성바위'로불리우는여러개의바위가있는데, 그바위의높이가조금만더높았더라면이마을에서역적이날뻔했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
.마을사람들은이느티나무가마을을수호해주는당산나무라하여정성껏아끼고있으며,
매년음력정월초3일오시에이나무에동아줄을감아놓고그해의평안과소원성취를비는당산제를지내고있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3/6
.성덕마을왕버드나무.지정번호: 천연기념물제296호.소재지: 김제시봉남면종덕리성덕마을.규격양식: 높이20m
.소유지: 성덕마을.지정일: 1982 년11월3일.성덕마을남쪽으로흐르는원평천제방옆에서있는이나무는수령(樹齡)이약450년으로서우리나라의왕버드나무중가장오래된것으로알려져있다. 나무의크기는높이가20m, 1m 높이에서둘레9m, 그리고수관(樹冠)의지름이약27m이다.
.이나무는성덕마을의당산나무로서몇년전까지만하여도음력정월보름날이되면이나무에동아줄을감아놓고당산제를지냈다고한다. 그러나지금은그당산제를지내지않는다. 그래서마을사람들은마을에흉한일이생기면으레그탓을당산제를행하지않는데에돌리며그부활을거론한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3/6
.성덕마을왕버드나무.지정번호: 천연기념물제296호.소재지: 김제시봉남면종덕리성덕마을.규격양식: 높이20m
.소유지: 성덕마을.지정일: 1982 년11월3일.성덕마을남쪽으로흐르는원평천제방옆에서있는이나무는수령(樹齡)이약450년으로서우리나라의왕버드나무중가장오래된것으로알려져있다. 나무의크기는높이가20m, 1m 높이에서둘레9m, 그리고수관(樹冠)의지름이약27m이다.
.이나무는성덕마을의당산나무로서몇년전까지만하여도음력정월보름날이되면이나무에동아줄을감아놓고당산제를지냈다고한다. 그러나지금은그당산제를지내지않는다. 그래서마을사람들은마을에흉한일이생기면으레그탓을당산제를행하지않는데에돌리며그부활을거론한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4/6
.벽골제쌍용놀이.지정번호: 지방민속자료제10호.소재지: 김제시부량면용성리용골마을.시대: 백제시대.소유자: 용골마을.지정일: 1975 년12월3일일: 1934 년8월27일.전설에의하면벽골제방으로부터약2백미터하류지점신털미산북쪽끝에용이살만한큰웅덩이가있었는데, 이웅덩이를백룡이살면서벽골제를수호했다하여"벽골룡"으로칭하게되었으며, 또하나는벽골제중간제방약백미터하류지점인연포천에도또하나의큰웅덩이가있었는데여기에는청룡이면서아주심술사나운짓을많이했다고한다.
급기야청룡은김제태수의외동딸단야까지해치려고하였으나, 수많은장정들이죽음을무릅쓰고쌓은벽골제를지키고, 금만평야의풍년을가져오게하기위하여목숨까지바치려는단야낭자의거룩한정신앞에포악하고심술궂던청룡도감탄의눈물을흘리며물러섰다고한다. 그리하여이와같은단야낭자의갸륵했던정신을기리는민속놀이로벽골제쌍룡놀이는해마다벽골문화제전의주요행사로거행되고있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4/6
.벽골제쌍용놀이.지정번호: 지방민속자료제10호.소재지: 김제시부량면용성리용골마을.시대: 백제시대.소유자: 용골마을.지정일: 1975 년12월3일일: 1934 년8월27일.전설에의하면벽골제방으로부터약2백미터하류지점신털미산북쪽끝에용이살만한큰웅덩이가있었는데, 이웅덩이를백룡이살면서벽골제를수호했다하여"벽골룡"으로칭하게되었으며, 또하나는벽골제중간제방약백미터하류지점인연포천에도또하나의큰웅덩이가있었는데여기에는청룡이면서아주심술사나운짓을많이했다고한다.
급기야청룡은김제태수의외동딸단야까지해치려고하였으나, 수많은장정들이죽음을무릅쓰고쌓은벽골제를지키고, 금만평야의풍년을가져오게하기위하여목숨까지바치려는단야낭자의거룩한정신앞에포악하고심술궂던청룡도감탄의눈물을흘리며물러섰다고한다. 그리하여이와같은단야낭자의갸륵했던정신을기리는민속놀이로벽골제쌍룡놀이는해마다벽골문화제전의주요행사로거행되고있다.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5/6
.월촌입석줄다리기.지정번호: 지방민속자료제7호.소재지: 김제시입석동.시대: 백제시대.소유자: 김제시.지정일: 1974 년9월27일.입석줄다리기는정월보름날밤에행해진다. 음력정월초에농악대는마을을돌면서각가정의수복을빌어준다. 이때농악대의방문을받은집에서는술과음식을내어이들을대접하며보름날줄다리기와당산제를지내는데드는비용으로충당할쌀을약간씩낸다.
12일쯤되면줄다리기에사용할동아줄을꼬기시작하는데이때에쓰이는볏짚도여러집으로부터약간씩거둬들인다. 보름날이되면아침일찍입석에감겨있는줄을풀어내고주위를말끔히청소한다. 달이떠오르면제주의개시신호에의해줄다리기가시작되는데남성과여성으로편을갈라서대항한다. 전해오는이야기에의하면여성편이이겨야그해에풍년이든다고한다. 줄다리기가끝나면이때사용한동아줄을입석에감고제주주관하에당산제를엄숙하게지낸다. 제사가끝나면여기에참가했던모든사람들은음복을하고농악대의농악소리에맞추어흥겹게논다. 이입석줄다리기는1981년제22회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국무총리상을받기도했다.
김제시제공Cein 제공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5/6
.월촌입석줄다리기.지정번호: 지방민속자료제7호.소재지: 김제시입석동.시대: 백제시대.소유자: 김제시.지정일: 1974 년9월27일.입석줄다리기는정월보름날밤에행해진다. 음력정월초에농악대는마을을돌면서각가정의수복을빌어준다. 이때농악대의방문을받은집에서는술과음식을내어이들을대접하며보름날줄다리기와당산제를지내는데드는비용으로충당할쌀을약간씩낸다.
12일쯤되면줄다리기에사용할동아줄을꼬기시작하는데이때에쓰이는볏짚도여러집으로부터약간씩거둬들인다. 보름날이되면아침일찍입석에감겨있는줄을풀어내고주위를말끔히청소한다. 달이떠오르면제주의개시신호에의해줄다리기가시작되는데남성과여성으로편을갈라서대항한다. 전해오는이야기에의하면여성편이이겨야그해에풍년이든다고한다. 줄다리기가끝나면이때사용한동아줄을입석에감고제주주관하에당산제를엄숙하게지낸다. 제사가끝나면여기에참가했던모든사람들은음복을하고농악대의농악소리에맞추어흥겹게논다. 이입석줄다리기는1981년제22회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국무총리상을받기도했다.
김제시제공Cein 제공
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6/6
.장화동쌀뒤주.지정번호: 지방민속자료제11호.소재지: 김제시장화동후장마을.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정종수(사유)
.지정일: 1976 년4월3일.후장마을에는정구례고가로널리알려진집이있다. 이집의안채오른쪽앞에는커다란쌀뒤주가놓여있다. 이쌀뒤주는조선고종초인1864년에정준섭이만들어사용하던것이다. 한때구레군수를역임하였기때문에'정구례'로더잘알려져있는정준섭은조부때부터전해내려온많은토지를소유한토호였다. 따라서그의집에는매일같이많은과객이나식객이찾아왔으며, 그는이들을융숭하게대접하였다. 이처럼많은외부인을대접하기위해서는비축하고있는쌀이풍부해야만했는데, 이문제를해결하기위해초대형의쌀뒤주를제작하였던것이라고한다. 쌀뒤주의용량은쌀70가마니라고하는데, 그크기는사방한변의길이가210cm 이고높이도역시210cm 이며, 재료는판자인데그두께가3.3cm 이다. 뒤주의문은앞면가운데의폭68cm 의공간으로서이공간에8개의판자를끼워사용하였다. 지붕은초가지붕이다.
김제시제공Cein 제공사적, 천연기념물, 지방민속자료6/6
.장화동쌀뒤주.지정번호: 지방민속자료제11호.소재지: 김제시장화동후장마을.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정종수(사유)
.지정일: 1976 년4월3일.후장마을에는정구례고가로널리알려진집이있다. 이집의안채오른쪽앞에는커다란쌀뒤주가놓여있다. 이쌀뒤주는조선고종초인1864년에정준섭이만들어사용하던것이다. 한때구레군수를역임하였기때문에'정구례'로더잘알려져있는정준섭은조부때부터전해내려온많은토지를소유한토호였다. 따라서그의집에는매일같이많은과객이나식객이찾아왔으며, 그는이들을융숭하게대접하였다. 이처럼많은외부인을대접하기위해서는비축하고있는쌀이풍부해야만했는데, 이문제를해결하기위해초대형의쌀뒤주를제작하였던것이라고한다. 쌀뒤주의용량은쌀70가마니라고하는데, 그크기는사방한변의길이가210cm 이고높이도역시210cm 이며, 재료는판자인데그두께가3.3cm 이다. 뒤주의문은앞면가운데의폭68cm 의공간으로서이공간에8개의판자를끼워사용하였다. 지붕은초가지붕이다.
김제시제공Cein 제공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19
.귀신사3층석탑.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2호.소재지: 김제시금산면청도리귀신사.규격양식: 높이545cm
.재료: 화강석.시대: 백제시대.지정일: 1974 년9월27일.탑의기단부는계단식의3단으로되어있는데, 동쪽부분의제일아래기단석이심히이탈되어있다. 기단의제일윗층한변의길이는223cm 이다. 옥신은1층의경우우주와면석이8개의석재로되어있고, 2 층과3층의경우는하나의석재로만들어졌다. 1층의우주중동북쪽방향의것은윗부분이면석으로부터5cm 쯤벌어져있어서금방이라도탑이무너질것같은불안감을자아내고있다. 옥개석은1층은8개, 2 층은4개, 3 층은1개의석재로되어있고, 각층옥개석의1면의길이는1층부터280cm, 230cm, 180cm 이다.
.하지만석탑은원형을상실했을뿐만아니라도처에붕괴의위험마저안고있으므로하루빨리보수작업을해야할것이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19
.귀신사3층석탑.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2호.소재지: 김제시금산면청도리귀신사.규격양식: 높이545cm
.재료: 화강석.시대: 백제시대.지정일: 1974 년9월27일.탑의기단부는계단식의3단으로되어있는데, 동쪽부분의제일아래기단석이심히이탈되어있다. 기단의제일윗층한변의길이는223cm 이다. 옥신은1층의경우우주와면석이8개의석재로되어있고, 2 층과3층의경우는하나의석재로만들어졌다. 1층의우주중동북쪽방향의것은윗부분이면석으로부터5cm 쯤벌어져있어서금방이라도탑이무너질것같은불안감을자아내고있다. 옥개석은1층은8개, 2 층은4개, 3 층은1개의석재로되어있고, 각층옥개석의1면의길이는1층부터280cm, 230cm, 180cm 이다.
.하지만석탑은원형을상실했을뿐만아니라도처에붕괴의위험마저안고있으므로하루빨리보수작업을해야할것이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2/19
.귀신사석수.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4호.소재지: 김제시금산면청도리귀신사.시대: 고려시대.지정일: 1974 년9월27일.서쪽을응시한채웅크리고앉아있는사자상의이석수의몸길이가158cm 이고, 높이는62cm 이다. 등위중간부분에남근석(男根石)이우뚝솟아있는데이남근석은2단으로되어있다. 등위에남근석이있는점이매우특징적인데, 아래부분의길이는72cm 이고윗부분의길이는40cm 이다.
.석수의존재의미는두가지로이야기되고있다. 그하나는풍수지리설에의한것으로서석수가있는곳의지형이구순혈인데, 이터를누르기위하여이곳에석수를만들어놓았다는것이다. 다른하나는사찰내의남근석이있는석수상은백제의왕실자복사에서만볼수있는것이라고한다. 따라서귀신사가백제왕실의자복사이며법왕때창건되었다는주장도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2/19
.귀신사석수.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4호.소재지: 김제시금산면청도리귀신사.시대: 고려시대.지정일: 1974 년9월27일.서쪽을응시한채웅크리고앉아있는사자상의이석수의몸길이가158cm 이고, 높이는62cm 이다. 등위중간부분에남근석(男根石)이우뚝솟아있는데이남근석은2단으로되어있다. 등위에남근석이있는점이매우특징적인데, 아래부분의길이는72cm 이고윗부분의길이는40cm 이다.
.석수의존재의미는두가지로이야기되고있다. 그하나는풍수지리설에의한것으로서석수가있는곳의지형이구순혈인데, 이터를누르기위하여이곳에석수를만들어놓았다는것이다. 다른하나는사찰내의남근석이있는석수상은백제의왕실자복사에서만볼수있는것이라고한다. 따라서귀신사가백제왕실의자복사이며법왕때창건되었다는주장도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3/19
.귀신사부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3호.소재지:김제시금산면청도리.규격양식: 높이250cm
.재료: 화강석.시대: 고려시대.지정일: 1974 년9월27일.이부도는귀신사에서남쪽으로50cm 쯤떨어진곳에있는데, 하대석과상대석에는각각복연(覆蓮)과앙연(仰蓮)이새겨져있으며, 그사이의중대석은8각기둥으로되어있다.
도신은가운데가조금불룩한원통형이며, 옥개석은8각형으로낙수면(落水面)의경사가크고추녀끝이위로반전(反轉) 되어있다. 상윤부에는보주(寶珠)만이얹혀있다.
부도의각부분크기는다음과같다. 중대석의높이는55cm, 그한변의길이는20cm,
상대석의높이는42cm, 부도신의높이는63cm, 옥개석의높이와한변의길이는각각42cm, 그리고보주의높이는20cm 이다. 하대석은땅에묻혀있다. 원래는논가운데있었는데, 현재는주변땅을구입하여잘정돈되어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3/19
.귀신사부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3호.소재지:김제시금산면청도리.규격양식: 높이250cm
.재료: 화강석.시대: 고려시대.지정일: 1974 년9월27일.이부도는귀신사에서남쪽으로50cm 쯤떨어진곳에있는데, 하대석과상대석에는각각복연(覆蓮)과앙연(仰蓮)이새겨져있으며, 그사이의중대석은8각기둥으로되어있다.
도신은가운데가조금불룩한원통형이며, 옥개석은8각형으로낙수면(落水面)의경사가크고추녀끝이위로반전(反轉) 되어있다. 상윤부에는보주(寶珠)만이얹혀있다.
부도의각부분크기는다음과같다. 중대석의높이는55cm, 그한변의길이는20cm,
상대석의높이는42cm, 부도신의높이는63cm, 옥개석의높이와한변의길이는각각42cm, 그리고보주의높이는20cm 이다. 하대석은땅에묻혀있다. 원래는논가운데있었는데, 현재는주변땅을구입하여잘정돈되어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4/19
.김제내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1호.소재지: 김제시교동.시대: 조선시대.소유자: 김제시.지정일: 1974 년9월27일.구전에의하면이건물은김제동헌의건축연대인1667년에지어졌다고한다. 현재는ㄷ자형안채만남아있으나, 원래는안행랑채, 고방채, 안변소등의여러부속건물이있었을것이다. 내아(內衙)는동헌(東軒)의바로뒷편에위치해있다. 이건물은동쪽이트인ㄷ자형의팔작지붕집으로, ㄷ자중북쪽에는동편에커다란부엌이있고,그왼편에2칸짜리방과마루로된1칸자리골방이있으며, 남쪽에는가운데에부엌(1칸)이있고, 그좌우에2
칸짜리방이하나씩붙어있다. 서쪽에는마루(3칸×2칸)가놓여있어남쪽과북쪽의방을연결시켜주고있다. 동헌에부속된내아였던만큼기둥이나서까래등에사용된목재가훌륭하고주초도정성들여다듬은것을놓았으며, 처마는홑처마이다. 기둥위의도리는다섯모로접어놓아서고졸한느낌을주며, 모든기둥을두리기둥으로세웠다.
너른평지에건물을세웠으므로좌우날개의지붕과몸체의지붕이한몸으로되었다. 사용된부재도훌륭하지만격식을갖추어지은건물이어서내동헌으로서의소박하면서도장중하고균형잡힌옛모습을충분히엿볼수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4/19
.김제내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1호.소재지: 김제시교동.시대: 조선시대.소유자: 김제시.지정일: 1974 년9월27일.구전에의하면이건물은김제동헌의건축연대인1667년에지어졌다고한다. 현재는ㄷ자형안채만남아있으나, 원래는안행랑채, 고방채, 안변소등의여러부속건물이있었을것이다. 내아(內衙)는동헌(東軒)의바로뒷편에위치해있다. 이건물은동쪽이트인ㄷ자형의팔작지붕집으로, ㄷ자중북쪽에는동편에커다란부엌이있고,그왼편에2칸짜리방과마루로된1칸자리골방이있으며, 남쪽에는가운데에부엌(1칸)이있고, 그좌우에2
칸짜리방이하나씩붙어있다. 서쪽에는마루(3칸×2칸)가놓여있어남쪽과북쪽의방을연결시켜주고있다. 동헌에부속된내아였던만큼기둥이나서까래등에사용된목재가훌륭하고주초도정성들여다듬은것을놓았으며, 처마는홑처마이다. 기둥위의도리는다섯모로접어놓아서고졸한느낌을주며, 모든기둥을두리기둥으로세웠다.
너른평지에건물을세웠으므로좌우날개의지붕과몸체의지붕이한몸으로되었다. 사용된부재도훌륭하지만격식을갖추어지은건물이어서내동헌으로서의소박하면서도장중하고균형잡힌옛모습을충분히엿볼수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5/19
.청운사대헤보각선사서.지정번호: 유형문화재제174호.소재시: 김제시청하면대청리448-1
.현상: 전통한지먹물필사본문집.규격: 가로18.7cm, 세로28.5cm, 228 쪽.소유자: 청운사주지유삼영(법명도원)
.지정월일: 1999 년11월19일.전통한지에먹물필사본글씨인데보존상태가양호하며참학혜연의작품으로정지거사와의문답형식의문창중편으로단행원본이다.
.1531년(가청10년)의작품집을1568년(융경2년)에서책으로제작한것으로추정된다.
고려말의고승이자대선사인보각국사의희귀한문집으로추정되며, 이서책이단행원본인관계로그희소가치가있어문화재로지정관리함이타당하다고사료되어문화재로지정되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5/19
.청운사대헤보각선사서.지정번호: 유형문화재제174호.소재시: 김제시청하면대청리448-1
.현상: 전통한지먹물필사본문집.규격: 가로18.7cm, 세로28.5cm, 228 쪽.소유자: 청운사주지유삼영(법명도원)
.지정월일: 1999 년11월19일.전통한지에먹물필사본글씨인데보존상태가양호하며참학혜연의작품으로정지거사와의문답형식의문창중편으로단행원본이다.
.1531년(가청10년)의작품집을1568년(융경2년)에서책으로제작한것으로추정된다.
고려말의고승이자대선사인보각국사의희귀한문집으로추정되며, 이서책이단행원본인관계로그희소가치가있어문화재로지정관리함이타당하다고사료되어문화재로지정되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6/19
.조팔달장군유품.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04호.소재지: 김제시복죽동이문마을.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조형곤씨.지정일: 1983 년8월24일.조필달(1600-1664 년)은무과에급제한후인조8년(1630 년) 충좌위우부장의직을처음으로제수받았다. 그후순안현령, 보성군수, 양주목사, 포도대장, 전라병마절도사, 삼도통제사등72군데의관직을역임하였다. 그는많은관직을거치면서국사를공정히처리하고재물을탐내지않아청백리로서명성이널리퍼졌고, 이를알게된국왕이그의청렴함을시험하기조차하였다. 효종때에송시열, 유집등과함께북벌계획에참여하기도하였다.
그는무관직을많이거쳤기때문인지그의유물은주로무관이사용하던것들이다. 현재남아있는유물은6종17점이있는데, 조형곤씨가이유물을보관하기어려운실정에있기때문에벽골제유물전시관으로옮겨보관하고있으며, 박물관에보관되어있는유물은갑옷1벌, 군척1점, 지휘봉1점, 호남육군병마기1점, 사신대1점등옛문서20점(20 점의고문서중조필달과관계있는것은13점)이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6/19
.조팔달장군유품.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04호.소재지: 김제시복죽동이문마을.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조형곤씨.지정일: 1983 년8월24일.조필달(1600-1664 년)은무과에급제한후인조8년(1630 년) 충좌위우부장의직을처음으로제수받았다. 그후순안현령, 보성군수, 양주목사, 포도대장, 전라병마절도사, 삼도통제사등72군데의관직을역임하였다. 그는많은관직을거치면서국사를공정히처리하고재물을탐내지않아청백리로서명성이널리퍼졌고, 이를알게된국왕이그의청렴함을시험하기조차하였다. 효종때에송시열, 유집등과함께북벌계획에참여하기도하였다.
그는무관직을많이거쳤기때문인지그의유물은주로무관이사용하던것들이다. 현재남아있는유물은6종17점이있는데, 조형곤씨가이유물을보관하기어려운실정에있기때문에벽골제유물전시관으로옮겨보관하고있으며, 박물관에보관되어있는유물은갑옷1벌, 군척1점, 지휘봉1점, 호남육군병마기1점, 사신대1점등옛문서20점(20 점의고문서중조필달과관계있는것은13점)이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7/19
.석정이정직선생유적· 유묵.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49호.소재지: 김제시신풍동225-7
.수량: 15 종30책.소유자: 이종석.석정이정직(1841∼1910) 은조선말학자로서실학에조예가깊고시문에능했으며글씨와그림에도뛰어났다. 선생의유저·유묵에는성리학을중심으로서구문학인칸트철학을비교분석하여저술한내용이잘나타나있다. 석정은1896년중국에가서1년동안머무를때연경에서동·서양의문물을보고새로이동·서사상을절충하는새로운문학의길을열게되었다. 석정이연경에머무르는동안중국시문학에대한고증과평론, 중국성리학에있어서의정주학과양명학에대한변해와논평, 그리고칸트등서양철학에대한연구와동서철학의절충론등이연석산방미정고, 문고, 시고에실려있다. 현재선생이저술한연석산방미정고1권-9 권, 연석산방시고1권-5 권, 연석산방미정고별집2권등을선생의고손인이종석씨가보관관리하고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7/19
.석정이정직선생유적· 유묵.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49호.소재지: 김제시신풍동225-7
.수량: 15 종30책.소유자: 이종석.석정이정직(1841∼1910) 은조선말학자로서실학에조예가깊고시문에능했으며글씨와그림에도뛰어났다. 선생의유저·유묵에는성리학을중심으로서구문학인칸트철학을비교분석하여저술한내용이잘나타나있다. 석정은1896년중국에가서1년동안머무를때연경에서동·서양의문물을보고새로이동·서사상을절충하는새로운문학의길을열게되었다. 석정이연경에머무르는동안중국시문학에대한고증과평론, 중국성리학에있어서의정주학과양명학에대한변해와논평, 그리고칸트등서양철학에대한연구와동서철학의절충론등이연석산방미정고, 문고, 시고에실려있다. 현재선생이저술한연석산방미정고1권-9 권, 연석산방시고1권-5 권, 연석산방미정고별집2권등을선생의고손인이종석씨가보관관리하고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8/19
.팔효사은행나무.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89호.소재지: 김제시신풍동509번지.규격양식: 수고약16m, 수관18*17m 흉고직경3.55m
.소유자: 나주나씨종친회.지정일: 1996 년3월29일.팔효사경내에있는은행나무는수령약525년이나되는노거수로, 12 개의가지를뻗는등수세가왕성한상태이고수형또한같은경내에있는축조물등과함께좋은조화를이루고있다. 은행나무가서있는팔효사는나주나씨문중3세대에걸친8명의효자효행을기리기위하여세워진서원이다. 은행나무는팔효사의주벽나안세의부친나보중이어려서심었다고하며나씨문중에장원급제등경사가있을때에는은행나무에큰북을매달아쳤고또효자가날적에는잎만피고,작고했을때는3년상기가지난후에야열매가맺었다고하여유명하다.또흉년이들은해에는유난히열매가많이열기도했다고한다. 이곳에는은행나무1주, 팔효사1동(10평), 위인문1동(5평), 백원제1동(20평), 첨선문1동(3
평), 유허비1기, 사적비2기가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8/19
.팔효사은행나무.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89호.소재지: 김제시신풍동509번지.규격양식: 수고약16m, 수관18*17m 흉고직경3.55m
.소유자: 나주나씨종친회.지정일: 1996 년3월29일.팔효사경내에있는은행나무는수령약525년이나되는노거수로, 12 개의가지를뻗는등수세가왕성한상태이고수형또한같은경내에있는축조물등과함께좋은조화를이루고있다. 은행나무가서있는팔효사는나주나씨문중3세대에걸친8명의효자효행을기리기위하여세워진서원이다. 은행나무는팔효사의주벽나안세의부친나보중이어려서심었다고하며나씨문중에장원급제등경사가있을때에는은행나무에큰북을매달아쳤고또효자가날적에는잎만피고,작고했을때는3년상기가지난후에야열매가맺었다고하여유명하다.또흉년이들은해에는유난히열매가많이열기도했다고한다. 이곳에는은행나무1주, 팔효사1동(10평), 위인문1동(5평), 백원제1동(20평), 첨선문1동(3
평), 유허비1기, 사적비2기가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9/19 지방유형· 무형문화재9/19
.목조아마타여래상.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78호.소재지: 김제시황산동6번지문수사(관리자:이용운)
.시대: 조선제19대숙종41년(1715 년)
.규격: 높이66cm, 머리높이22cm, 어깨폭1cm,
가슴넓이10cm, 무릎넓이43cm, 무릎높이11cm
.지정년월일: 2000 년3월31일.위의목조아미타여래상은문수사대웅전불단에보존되어있는목불로최근개금불사때복장기가발견되었는데, 여기에이불상의조성연대가조선숙종41년으로기록되어있었다. 이불상은중형의목불로원만한상호와당당한어깨, 균정한동체, 안정감있는무릎등으로보아임진왜란이후의대표작으로볼수있는불상으로특히조성연기에서정확한연대를알수있는귀중한목불인점에서문화재로지정되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0/19
.김제향교대성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9호.소재지: 김제시교동39
.규모양식: 앞면3칸, 옆면2칸, 맞배지붕.시대: 조선시대(태종, 1404 년)
.소유자: 전라북도향교재단.지정일: 1971 년12월2일.이대성전은정유재란의병화로소실되었으나, 인조13년에다시세워오늘에이르기까지몇차례중수되었다. 2 층으로된만화루를들어서면오른쪽에교직사한동(3 칸)이있고,
만화루전면으로돌계단을오르면바로명륜당이다. 이명륜당을돌아서다시돌계단을오르면문3칸(작은소슬대문3칸)이있고이내삼문을들어서면정면에대성전(정면3칸, 측면2칸맞배지붕) 이있으며, 이대성전오른쪽에는동무3칸, 왼쪽에는서무3칸이위치하고있다. 명륜당은임진왜란때불타없어지고1842년에보수, 1879 년에중수하였으나6.25 때파괴되었던것을1958년에복구한것으로정면5칸, 측면3칸고설집이고, 만화루는향교의정문으로2층누각이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0/19
.김제향교대성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9호.소재지: 김제시교동39
.규모양식: 앞면3칸, 옆면2칸, 맞배지붕.시대: 조선시대(태종, 1404 년)
.소유자: 전라북도향교재단.지정일: 1971 년12월2일.이대성전은정유재란의병화로소실되었으나, 인조13년에다시세워오늘에이르기까지몇차례중수되었다. 2 층으로된만화루를들어서면오른쪽에교직사한동(3 칸)이있고,
만화루전면으로돌계단을오르면바로명륜당이다. 이명륜당을돌아서다시돌계단을오르면문3칸(작은소슬대문3칸)이있고이내삼문을들어서면정면에대성전(정면3칸, 측면2칸맞배지붕) 이있으며, 이대성전오른쪽에는동무3칸, 왼쪽에는서무3칸이위치하고있다. 명륜당은임진왜란때불타없어지고1842년에보수, 1879 년에중수하였으나6.25 때파괴되었던것을1958년에복구한것으로정면5칸, 측면3칸고설집이고, 만화루는향교의정문으로2층누각이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1/19
.김제동헌.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0호.소재지: 김제시교동39
.규격양식: 앞면7칸, 옆면4칸, 팔작지붕.시대: 조선시대(1667 년)
.소유자: 김제시.지정일: 1974 년9월27일.한식목조와가(韓式木造瓦家)인김제동헌은동남향으로건물의안을보면왼편에앞면두칸, 옆면한칸의방이있고나머지부분은마루로되어있다. 김제동헌의자세한연혁은알수없었는데, 1981 년김제동헌을보수할당시에2개의상량문이발견됨으로써이동헌건물의연혁이보다구체적으로밝혀지게되었다. 한상량문에는(崇楨後五十午年己卯李
等世晟時靭建七月二十七日寅時立柱閏七月十八日隨時上樑)쓰여있어조선숙종때의것임을보여주고있으며, 다른상량문에서는고종18년(1881) 군수이위재가이동헌을중건한사실을보여주고있다. 이동헌건물은일제시대부터1960년대초까지김제읍사무소로사용되었으며, 읍사무소가다른곳으로이전한후부터는한동안방치되었었다. 그런데현존하는동헌으로내아(內衙)와인접해있는경우는김제동헌(東軒)이유일한것으로알려져주목의대상이되었으며, 근래에이르러몇차례의보수와복원작업이행하여졌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1/19
.김제동헌.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0호.소재지: 김제시교동39
.규격양식: 앞면7칸, 옆면4칸, 팔작지붕.시대: 조선시대(1667 년)
.소유자: 김제시.지정일: 1974 년9월27일.한식목조와가(韓式木造瓦家)인김제동헌은동남향으로건물의안을보면왼편에앞면두칸, 옆면한칸의방이있고나머지부분은마루로되어있다. 김제동헌의자세한연혁은알수없었는데, 1981 년김제동헌을보수할당시에2개의상량문이발견됨으로써이동헌건물의연혁이보다구체적으로밝혀지게되었다. 한상량문에는(崇楨後五十午年己卯李
等世晟時靭建七月二十七日寅時立柱閏七月十八日隨時上樑)쓰여있어조선숙종때의것임을보여주고있으며, 다른상량문에서는고종18년(1881) 군수이위재가이동헌을중건한사실을보여주고있다. 이동헌건물은일제시대부터1960년대초까지김제읍사무소로사용되었으며, 읍사무소가다른곳으로이전한후부터는한동안방치되었었다. 그런데현존하는동헌으로내아(內衙)와인접해있는경우는김제동헌(東軒)이유일한것으로알려져주목의대상이되었으며, 근래에이르러몇차례의보수와복원작업이행하여졌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2/19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2/19
.문수사목조석가여래좌상.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77호.소재지: 김제시황산동6번지문수사(관리자: 이용운)
.시대: 조선광해군2년(1610 년)
.규격: 높이68cm, 머리높이26cm, 어깨폭34cm,
가슴넓이13cm, 무릎넓이46cm, 무릎높이9cm
.지정년월일: 2000 년3월31일.위의불상은문수사대웅전불단에보존되어있는목불로최근개금불사시복장기가발견되었는데, 여기에이불상의조성연대는조선광해군2년(1610 년)에조성되었다고표시된조성연기에서정확히연대를알수있다. 목조석가여래좌상은귀중한중형목불로원만한상호관계와당당한어깨, 균정한동체, 안정감있는무릎등으로보아조선중기불상양식의여운을엿볼수있는귀중한목불인점에서지방문화재로지정되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3/19
.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05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상신리.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장훈규씨.지정일: 1983 년8월24일.장태수(1841-1910 년)의자는성안이요, 호는일우제이고, 본관은인동이다. 그는21세가되던조선철종12년(1861 년)에식년문과병과로급제하고승문원권지부정자로관직에나아갔다. 그후그는성균관전적, 사헌부의지평과장령장악원정, 사간원의정언과헌납,
양산군수, 병조참의등의관직을역임하고가선대부시종원부경에까지올랐다.
.현존하는그의유물은총6종57점인데이들은1983년8월24일에지방유형문화재로지정되었다. 이들유물의소유자이자관리의무자는장태수의고손인장훈규이며, 그가보관하고있는유물11점은다음과같다. 금양관1점, 백사모1점, 조복1벌, 흉배1점(학8마리), 백각대1점, 가죽신1켤레, 아홀1점, 호패2개( 앞면에는'장태수(張泰秀) 신축생신유문과(辛丑生辛酉文科)' 뒷면에는'신유(辛酉)'라고새겨져있다. ) 장검1자루( 길이67.5cm, 폭29cm, 손잡이길이16cm), 사선1점이다.
.장태수선생유물지방유형· 무형문화재13/19
.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05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상신리.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장훈규씨.지정일: 1983 년8월24일.장태수(1841-1910 년)의자는성안이요, 호는일우제이고, 본관은인동이다. 그는21세가되던조선철종12년(1861 년)에식년문과병과로급제하고승문원권지부정자로관직에나아갔다. 그후그는성균관전적, 사헌부의지평과장령장악원정, 사간원의정언과헌납,
양산군수, 병조참의등의관직을역임하고가선대부시종원부경에까지올랐다.
.현존하는그의유물은총6종57점인데이들은1983년8월24일에지방유형문화재로지정되었다. 이들유물의소유자이자관리의무자는장태수의고손인장훈규이며, 그가보관하고있는유물11점은다음과같다. 금양관1점, 백사모1점, 조복1벌, 흉배1점(학8마리), 백각대1점, 가죽신1켤레, 아홀1점, 호패2개( 앞면에는'장태수(張泰秀) 신축생신유문과(辛丑生辛酉文科)' 뒷면에는'신유(辛酉)'라고새겨져있다. ) 장검1자루( 길이67.5cm, 폭29cm, 손잡이길이16cm), 사선1점이다.
.장태수선생유물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4/19
.문수사마야여래좌상.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75호.소재지: 김제시황산동6* 재료: 화강석.규격: 가로120cm, 세로27cm, 높이170cm
.소유자: 문수사(관리자: 이용운)
.조성년대: 조선숙종41년(1715)
.지정년월일: 1999 년11월19일.문수사관음전후편(일명산신당기도터)에보존되어있는석불로고려중기때형식으로추정된다고하며, 50 여년전대웅전상량문에서발견되었다고하는설이있으나현재는고증할만한자료가없고, 연대나형식으로보아소중한문화유산으로판단되어문화재로지정되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4/19
.문수사마야여래좌상.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175호.소재지: 김제시황산동6* 재료: 화강석.규격: 가로120cm, 세로27cm, 높이170cm
.소유자: 문수사(관리자: 이용운)
.조성년대: 조선숙종41년(1715)
.지정년월일: 1999 년11월19일.문수사관음전후편(일명산신당기도터)에보존되어있는석불로고려중기때형식으로추정된다고하며, 50 여년전대웅전상량문에서발견되었다고하는설이있으나현재는고증할만한자료가없고, 연대나형식으로보아소중한문화유산으로판단되어문화재로지정되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5/19
.김제전교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2호.소재지: 김제시오정동(소유자: 김제시)
.규격양식: 높이212cm, 폭60cm, 두께18cm
.재료: 백석.시대: 조선시대(1680 년)
.지정일: 1974 년9월27일.옛금구현의일북면, 하서면및초처면에살던백성들은매년비만오면수해로고통을당했다. 개면은벽골제의물이돌아모여흐르는곳에인접하여있기때문에조금만비가와도인근지역의물이다이곳으로흘러들어다리가떠내려가백성들이도랑을건너려면매번물에빠져야만했다. 그런데자칭관에서파견되었다고하는사감이라는자들이이에대비하여도랑을깊이파고다리를가설한다는명목으로백성들로부터돈을거두어들이고,
각종명목의지세를징수하는등많은폐단을야기시켰다. 이때마침(숙종)임금이뚝을쌓고세를거둠으로인한각종폐단을척결하라는윤음(왕의말씀)을온나라에내리었다.
이에당시금구현령이던이순익은이를받들어사감을내쫓고다시는이러한일이발생하지않도록하기위해왕의윤음과그간의과정을비석에새겨백성들의왕래가잦은곳에비를세웠다. 이것이이른바전교비다. 1992년그옆에정화비를세우면서전교비의내용을정리하여비문에새겼고, 전교비의비각도새로만들어세웠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5/19
.김제전교비.지정번호: 지방유형문화재제62호.소재지: 김제시오정동(소유자: 김제시)
.규격양식: 높이212cm, 폭60cm, 두께18cm
.재료: 백석.시대: 조선시대(1680 년)
.지정일: 1974 년9월27일.옛금구현의일북면, 하서면및초처면에살던백성들은매년비만오면수해로고통을당했다. 개면은벽골제의물이돌아모여흐르는곳에인접하여있기때문에조금만비가와도인근지역의물이다이곳으로흘러들어다리가떠내려가백성들이도랑을건너려면매번물에빠져야만했다. 그런데자칭관에서파견되었다고하는사감이라는자들이이에대비하여도랑을깊이파고다리를가설한다는명목으로백성들로부터돈을거두어들이고,
각종명목의지세를징수하는등많은폐단을야기시켰다. 이때마침(숙종)임금이뚝을쌓고세를거둠으로인한각종폐단을척결하라는윤음(왕의말씀)을온나라에내리었다.
이에당시금구현령이던이순익은이를받들어사감을내쫓고다시는이러한일이발생하지않도록하기위해왕의윤음과그간의과정을비석에새겨백성들의왕래가잦은곳에비를세웠다. 이것이이른바전교비다. 1992년그옆에정화비를세우면서전교비의내용을정리하여비문에새겼고, 전교비의비각도새로만들어세웠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6/19
.김제우도농악.지정번호: 무형문화재제7-3 호.기능보유자: 박판열(朴判烈)
.지정일: 1996 년3월29일.제12회전주대사습놀이농악부문장원국무총리상수상.전라예술제대상대통령상수상(1988)
.김제우도농악은호남농악의한지류로서김제시전역에걸쳐분포하고있는농악으로일찍부터각마을공동체단위의대동굿으로오랫동안전승되어오다가김도삼, 나도숙, 현관쇠, 백남윤등에이르러좀더전문적인예인집단형태의농악으로발전되었다. 농악의구성은쇠, 장구를주악기로사용하고, 큰북은사용하지않으며, 평야지대의두레굿이발달되어있는점이그특징이다. 박판열의예술성은현재생존해있는호남우도농악, 특히김제농악장구잡이중에서는가장원로예능보유자이며, 그예능실력또한가장뛰어난자로서특히김제지역에서널리성행하는두레굿가락과그공연방식을체득하고있어서김제농악의토착성의보존계승이라는점에서손색이없는인물이다. 박판열은11세부터안재홍에게10년간사사했고1940년부터10년간이명석에게사사, 김제입석농악단조직육성,
김제우도농악단장역임등농악발전에전념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6/19
.김제우도농악.지정번호: 무형문화재제7-3 호.기능보유자: 박판열(朴判烈)
.지정일: 1996 년3월29일.제12회전주대사습놀이농악부문장원국무총리상수상.전라예술제대상대통령상수상(1988)
.김제우도농악은호남농악의한지류로서김제시전역에걸쳐분포하고있는농악으로일찍부터각마을공동체단위의대동굿으로오랫동안전승되어오다가김도삼, 나도숙, 현관쇠, 백남윤등에이르러좀더전문적인예인집단형태의농악으로발전되었다. 농악의구성은쇠, 장구를주악기로사용하고, 큰북은사용하지않으며, 평야지대의두레굿이발달되어있는점이그특징이다. 박판열의예술성은현재생존해있는호남우도농악, 특히김제농악장구잡이중에서는가장원로예능보유자이며, 그예능실력또한가장뛰어난자로서특히김제지역에서널리성행하는두레굿가락과그공연방식을체득하고있어서김제농악의토착성의보존계승이라는점에서손색이없는인물이다. 박판열은11세부터안재홍에게10년간사사했고1940년부터10년간이명석에게사사, 김제입석농악단조직육성,
김제우도농악단장역임등농악발전에전념했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7/19
.장구제작(악기)
.지정번호: 무형문화재제12-3 호.기능보유자: 강신하(姜信夏)
.주소: 김제시신풍동105-8
.종별: 악기공(장고)
.지정일: 1997 년7월18일.삼한시대부터벽골제로인한농경문화를바탕으로한전통김제우도농악과함께이지방장구제작의명인으로이름을떨쳤던백봉남, 선운필씨의문하로입문하여스승들이끌과망치로나무를깎고다듬는작업과정을지켜보면서제작기술을전수받았다. 40여년을장구만들기에온힘을쏟아온외길인생으로신풍장구로불리는강신하옹의솜씨는전국에널리알려져그의장구를찾은손길이끊임없이이어지고있다. 장구통의재료인오동나무속을파내고겉모양새를맵시나게다듬은후목이길고구멍의관이좁고가늘게하여오른쪽마구리에는말가죽을대어붙이고왼쪽마구리에는쇠가죽을대어만든그의장구는소리가깊고독특한음색을지녀강신하옹의치밀한손과영혼이담겨져있는명품이다. 수상내역을보면다음과같다. 1992 년6월23일전북공예품경진대회입상(도지사),
1993년5월20일공로패(전북공예인협회), 1994 년6월18일전북공예품경진대회입상(도지사), 1995 년6월17일전북공예품경진대회(도지사)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7/19
.장구제작(악기)
.지정번호: 무형문화재제12-3 호.기능보유자: 강신하(姜信夏)
.주소: 김제시신풍동105-8
.종별: 악기공(장고)
.지정일: 1997 년7월18일.삼한시대부터벽골제로인한농경문화를바탕으로한전통김제우도농악과함께이지방장구제작의명인으로이름을떨쳤던백봉남, 선운필씨의문하로입문하여스승들이끌과망치로나무를깎고다듬는작업과정을지켜보면서제작기술을전수받았다. 40여년을장구만들기에온힘을쏟아온외길인생으로신풍장구로불리는강신하옹의솜씨는전국에널리알려져그의장구를찾은손길이끊임없이이어지고있다. 장구통의재료인오동나무속을파내고겉모양새를맵시나게다듬은후목이길고구멍의관이좁고가늘게하여오른쪽마구리에는말가죽을대어붙이고왼쪽마구리에는쇠가죽을대어만든그의장구는소리가깊고독특한음색을지녀강신하옹의치밀한손과영혼이담겨져있는명품이다. 수상내역을보면다음과같다. 1992 년6월23일전북공예품경진대회입상(도지사),
1993년5월20일공로패(전북공예인협회), 1994 년6월18일전북공예품경진대회입상(도지사), 1995 년6월17일전북공예품경진대회(도지사)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8/19
.시조창(완제시조)
.지정번호: 무형문화재제14호.기능보유자: 채규남(蔡奎南)
.주소: 김제시백산면상리611
.종별: 시조창(완산시조)
.지정일: 1998 년11월27일.선조들의정서와생활의모습겨레의멋과얼이듬뿍담겨있는시조는고려중엽에시조의시형이이루어지기시작하여고려말엽에완성되어우리의전통가락으로발전하여왔으며,
특히이지방의많은민속발생은어느지방보다특이하다하겠다. 채규남은1955년부터시조가좋아서고명하신선생님으로부터체계적으로밤을낮삼아억척스럽게시조를배웠다.그뒤일평생을오직시조를읊고또한후진양성에매진하였을뿐만아니라각종대회심사위원으로위촉되어심사하였으며어울러시조발전에많은공헌을하여주위사람으로부터칭찬이자자하다. 향토문화적내용및특색에관하여는듣는이로하여금심금을울리는채규남의시조는신기에가까운목소리에우리민족의깊은열과정서가담겨져있다. 한평생을민중속에살아온삶, 영혼이담겨져있는독특한음색은후진에게전수되어영원히보존되어야한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8/19
.시조창(완제시조)
.지정번호: 무형문화재제14호.기능보유자: 채규남(蔡奎南)
.주소: 김제시백산면상리611
.종별: 시조창(완산시조)
.지정일: 1998 년11월27일.선조들의정서와생활의모습겨레의멋과얼이듬뿍담겨있는시조는고려중엽에시조의시형이이루어지기시작하여고려말엽에완성되어우리의전통가락으로발전하여왔으며,
특히이지방의많은민속발생은어느지방보다특이하다하겠다. 채규남은1955년부터시조가좋아서고명하신선생님으로부터체계적으로밤을낮삼아억척스럽게시조를배웠다.그뒤일평생을오직시조를읊고또한후진양성에매진하였을뿐만아니라각종대회심사위원으로위촉되어심사하였으며어울러시조발전에많은공헌을하여주위사람으로부터칭찬이자자하다. 향토문화적내용및특색에관하여는듣는이로하여금심금을울리는채규남의시조는신기에가까운목소리에우리민족의깊은열과정서가담겨져있다. 한평생을민중속에살아온삶, 영혼이담겨져있는독특한음색은후진에게전수되어영원히보존되어야한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9/19
.향토술담기.지정번호: 지방무형문화재제6호.소재지: 김제시요촌동384-24
.보유종목: 송순주(松筍酒)
.기능보유자: 김복순(金福順)
.지정일: 1987 년4월28일.송순주가경주김씨가문에전해내려온유래는경주김씨태사공파16세손김택(조선선조때병조정랑으로임진왜란시금산전투에서순직함)이선조께서위장병과신경통으로고통을겪고있던중부인(완산李씨)이좋은약을수소문하여송준주가좋다는말을듣고송순주빚는비법을익힌뒤이를만들어오랫동안먹은결과건강이아주좋아졌다.
그후부터근400년동안이나전해내려오게되어지금까지대대로송순주가김씨가문의밀장된가용주로전해내려오고있다. 현재90 고령인배음숙(기능보유자김복순의(시어머님)의구전에의해전해내려왔다. 배음숙은15세에김씨가문에시집와서시어머님, 시할머님으로부터송순주양조법을전수받아오늘에이르렀다. 그러나주세법에의한단속으로다만조상의제례에나조금씩빚어써왔는데, 자부인김복순씨에게비법을가르쳐서그명맥이이어져오던것이1987년4월28일옛것을보호하는차원에서송순주빚는기능보유자김복순를지방무형문화재로지정하였다.
지방유형· 무형문화재19/19
.향토술담기.지정번호: 지방무형문화재제6호.소재지: 김제시요촌동384-24
.보유종목: 송순주(松筍酒)
.기능보유자: 김복순(金福順)
.지정일: 1987 년4월28일.송순주가경주김씨가문에전해내려온유래는경주김씨태사공파16세손김택(조선선조때병조정랑으로임진왜란시금산전투에서순직함)이선조께서위장병과신경통으로고통을겪고있던중부인(완산李씨)이좋은약을수소문하여송준주가좋다는말을듣고송순주빚는비법을익힌뒤이를만들어오랫동안먹은결과건강이아주좋아졌다.
그후부터근400년동안이나전해내려오게되어지금까지대대로송순주가김씨가문의밀장된가용주로전해내려오고있다. 현재90 고령인배음숙(기능보유자김복순의(시어머님)의구전에의해전해내려왔다. 배음숙은15세에김씨가문에시집와서시어머님, 시할머님으로부터송순주양조법을전수받아오늘에이르렀다. 그러나주세법에의한단속으로다만조상의제례에나조금씩빚어써왔는데, 자부인김복순씨에게비법을가르쳐서그명맥이이어져오던것이1987년4월28일옛것을보호하는차원에서송순주빚는기능보유자김복순를지방무형문화재로지정하였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1/8
.금구산성.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85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월전리선암.형태: 테뫼식산성.시대: 통일신라시대.지정일: 1993 년8월31일.금구면월전리산의정상을중심으로축성한테뫼식산성으로, 산의동쪽부분은비교적완만한경사를이루고있어이부분에는자연석을이용하여축성한석축이100여미터이상남아있으며, 이같은석축의흔적은200여미터가추가로확인됐다. 산의서.북.남쪽은자연경사면을이용하였으며, 이러한자연성벽을포함하면전체길이는900여미터에이른다.
산성의축성년대를명확히밝혀주는문헌자료는없으나, 산성이기록된것은[금구읍지]와김정호의청구도, 대동여지도등이있는데, 읍지에는백제시대에쌓았다고실려있고청구도와대동여지도에는산성봉으로표기되어있어성이있었음을밝히고있다.
그러므로주변에산재한유물을중심으로연대를추정할수밖에없는데, 통일신라시대의토기편, 조선시대의와편, 고려시대의자기편등이뒤섞여있어, 지표에서수습되는유물에의하여통일신라시대를전후하여축성된것으로추정할수밖에없다. 그러나더자세한검토가요구된다고본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1/8
.금구산성.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85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월전리선암.형태: 테뫼식산성.시대: 통일신라시대.지정일: 1993 년8월31일.금구면월전리산의정상을중심으로축성한테뫼식산성으로, 산의동쪽부분은비교적완만한경사를이루고있어이부분에는자연석을이용하여축성한석축이100여미터이상남아있으며, 이같은석축의흔적은200여미터가추가로확인됐다. 산의서.북.남쪽은자연경사면을이용하였으며, 이러한자연성벽을포함하면전체길이는900여미터에이른다.
산성의축성년대를명확히밝혀주는문헌자료는없으나, 산성이기록된것은[금구읍지]와김정호의청구도, 대동여지도등이있는데, 읍지에는백제시대에쌓았다고실려있고청구도와대동여지도에는산성봉으로표기되어있어성이있었음을밝히고있다.
그러므로주변에산재한유물을중심으로연대를추정할수밖에없는데, 통일신라시대의토기편, 조선시대의와편, 고려시대의자기편등이뒤섞여있어, 지표에서수습되는유물에의하여통일신라시대를전후하여축성된것으로추정할수밖에없다. 그러나더자세한검토가요구된다고본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2/8
.이석정선생생가.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21호.소재지: 김제시백산면상정리.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이종석.지정일: 1974 년9월24일.석정이정직(1840∼1910년)선생은간제선생과더불어조선말기의뛰어난유학자인데,
27세에중국에가는사신을수행하여북경에머무르는동안중국의시문학에대한고증과논평, 성리학에있어서의정주학과양명학에대한변해와논평, 그리고칸트등서양철학에대한연구와동서철학의절충론등여러방면에서많은연구성과를거두었다. 그는이것을종합하여뒤에연석산방미정고25책을남겼으며, 뒤에향리에돌아와후진을양성하면서어음학, 천역학, 술수학등다방면에서걸친저술을남겼다.
.선생의생가는150여년전에건립되었으며, 조촐하게지어진평범한농가의모습을지니고있다. 초가지붕의안채는20여cm의축대위에세웠으며,평면은동측에배치된부엌에이어큰방과웃방이이어달렸고, 부엌남측에머릿방을두어호남지방에서는매우드문고패집이되었다. 석정선생은이집에서운명하였다고전한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2/8
.이석정선생생가.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21호.소재지: 김제시백산면상정리.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이종석.지정일: 1974 년9월24일.석정이정직(1840∼1910년)선생은간제선생과더불어조선말기의뛰어난유학자인데,
27세에중국에가는사신을수행하여북경에머무르는동안중국의시문학에대한고증과논평, 성리학에있어서의정주학과양명학에대한변해와논평, 그리고칸트등서양철학에대한연구와동서철학의절충론등여러방면에서많은연구성과를거두었다. 그는이것을종합하여뒤에연석산방미정고25책을남겼으며, 뒤에향리에돌아와후진을양성하면서어음학, 천역학, 술수학등다방면에서걸친저술을남겼다.
.선생의생가는150여년전에건립되었으며, 조촐하게지어진평범한농가의모습을지니고있다. 초가지붕의안채는20여cm의축대위에세웠으며,평면은동측에배치된부엌에이어큰방과웃방이이어달렸고, 부엌남측에머릿방을두어호남지방에서는매우드문고패집이되었다. 석정선생은이집에서운명하였다고전한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3/8
.오영순가옥.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33호.소재지: 김제시복죽동360
.소유자: 조용기.지정년월일: 2000 년3월31일.본건물은건축연대와당시거주자는자세하지않으나약170여년전에건축한것으로추정된다. 현거주자인오영순씨의시조부가이집을사들여서현재에이르고있으며, 한편이울안에있었던사랑채가24~25 년전에헐렸는데, 목재와규모, 건축공법이좋았던점을그목재를보면알수있다. 본건조물은이지방의전형적인ㅡ자초가집으로고색이잘보존되어있으며, 정면7칸홋집으로앞뒤퇴가있다. 7칸중1칸은개조되어물치장으로사용하고있으며,왼쪽한칸도기둥을중년에갈아넣은흔적이보인다. 방고래가이중으로되어있으나, 현재는기단으로통하는연돌하나만이사용되고있다. 마루바닥이옛날에는조립식이었는데, 중년에새로갈아넣으면서쇠못을사용했다. 또한이집은기단이60cm
이상으로높은게특징이며, 주초는자연석,기둥은방주형으로집자체는높은집이아니다.
그리고목재는큰집에비해적은것같다. 현재창고로사용하고있는칸은옛날에부엌방으로쓰인흔적이있다. 건평은26.5 평이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3/8
.오영순가옥.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33호.소재지: 김제시복죽동360
.소유자: 조용기.지정년월일: 2000 년3월31일.본건물은건축연대와당시거주자는자세하지않으나약170여년전에건축한것으로추정된다. 현거주자인오영순씨의시조부가이집을사들여서현재에이르고있으며, 한편이울안에있었던사랑채가24~25 년전에헐렸는데, 목재와규모, 건축공법이좋았던점을그목재를보면알수있다. 본건조물은이지방의전형적인ㅡ자초가집으로고색이잘보존되어있으며, 정면7칸홋집으로앞뒤퇴가있다. 7칸중1칸은개조되어물치장으로사용하고있으며,왼쪽한칸도기둥을중년에갈아넣은흔적이보인다. 방고래가이중으로되어있으나, 현재는기단으로통하는연돌하나만이사용되고있다. 마루바닥이옛날에는조립식이었는데, 중년에새로갈아넣으면서쇠못을사용했다. 또한이집은기단이60cm
이상으로높은게특징이며, 주초는자연석,기둥은방주형으로집자체는높은집이아니다.
그리고목재는큰집에비해적은것같다. 현재창고로사용하고있는칸은옛날에부엌방으로쓰인흔적이있다. 건평은26.5 평이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4/8
.남강정사.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64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상신리56
.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장현국씨(장태수의증손)
.지정일: 1983 년8월24일.일우제장태수는21세(1861 년)때문과에급제한후곧관직에나아갔는데,1875 년연로한부친을봉양하기위하여사직하고고향인금구에내려와효도에전념하였다. 부친사후에다시관직에나아간그는가선대부시정원부경까지올랐으나, 1910년일본에게나라를빼앗기자나라를지키지못한것이임금에게불충하고조상에게불효한것이라하여단식하여목숨을끊고자하였다. 단식하는동안에그는동포에게주권의회복을호소하는고결문을남겼으며, 단식을시작한지20일이지난11월27일생가에서숨을거두었다.
.장태수가살다간이집은'남강정사'라고불리우는데지금도옛날모습을그대로유지하고있다. 이집은자연석재로서40cm 정도로축대를쌓은후앞면4칸, 옆면4칸으로지은아담한초가집이다. 앞면의주간거리는왼쪽에서부터245cm, 200cm, 210cm, 277cm 이다. 제일왼쪽칸은뒷방이며,가운데두칸은안방으로가운데벽을터서하나의방으로사용하고, 오른쪽칸에는대청과부엌이있다. 안방앞에는폭133cm 의마루가놓여있고, 뒷방과대청의앞과, 옆부분에는툇마루가놓여있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4/8
.남강정사.지정번호: 지방기념물제64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상신리56
.시대: 조선시대.소유자: 장현국씨(장태수의증손)
.지정일: 1983 년8월24일.일우제장태수는21세(1861 년)때문과에급제한후곧관직에나아갔는데,1875 년연로한부친을봉양하기위하여사직하고고향인금구에내려와효도에전념하였다. 부친사후에다시관직에나아간그는가선대부시정원부경까지올랐으나, 1910년일본에게나라를빼앗기자나라를지키지못한것이임금에게불충하고조상에게불효한것이라하여단식하여목숨을끊고자하였다. 단식하는동안에그는동포에게주권의회복을호소하는고결문을남겼으며, 단식을시작한지20일이지난11월27일생가에서숨을거두었다.
.장태수가살다간이집은'남강정사'라고불리우는데지금도옛날모습을그대로유지하고있다. 이집은자연석재로서40cm 정도로축대를쌓은후앞면4칸, 옆면4칸으로지은아담한초가집이다. 앞면의주간거리는왼쪽에서부터245cm, 200cm, 210cm, 277cm 이다. 제일왼쪽칸은뒷방이며,가운데두칸은안방으로가운데벽을터서하나의방으로사용하고, 오른쪽칸에는대청과부엌이있다. 안방앞에는폭133cm 의마루가놓여있고, 뒷방과대청의앞과, 옆부분에는툇마루가놓여있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5/8
.금구향교대성전.지정번호: 문화재자료제113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금구리.시대: 고려시대.소유자: 향교재단.지정일: 1994 년4월1일.대성전은고려공양왕2년(1390 년)에현잠곡에창건하였으나임진왜란때화재로불타없어지게되었다. 그후서쪽양시산아래에중건하였으나지세가좋지못하여숙종원년(1675 년)에현위치로옮겨와오늘에이르고있다.
.이곳의배향설위는대성전에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등오성과송조육현즉, 주돈이,
정명도, 정이천, 소강철, 장횡거, 주회암을배향했다. 동·서벽에는우리나라18현즉동벽에는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주준길등을, 서벽에는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재를배향했다.
.대성전은정면3칸, 측면3칸의맛배지붕으로되어있으며, 명륜당은정면4칸, 측면2칸의팔작지붕으로되어있다. 만화루는조선세종4년(1422 년)에건립한것으로이층누각형식이며, 정면3칸, 측면2칸의맞배지붕으로이루어졌다. 1974 년에보수하고1976년에단청을새로이하였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5/8
.금구향교대성전.지정번호: 문화재자료제113호.소재지: 김제시금구면금구리.시대: 고려시대.소유자: 향교재단.지정일: 1994 년4월1일.대성전은고려공양왕2년(1390 년)에현잠곡에창건하였으나임진왜란때화재로불타없어지게되었다. 그후서쪽양시산아래에중건하였으나지세가좋지못하여숙종원년(1675 년)에현위치로옮겨와오늘에이르고있다.
.이곳의배향설위는대성전에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등오성과송조육현즉, 주돈이,
정명도, 정이천, 소강철, 장횡거, 주회암을배향했다. 동·서벽에는우리나라18현즉동벽에는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주준길등을, 서벽에는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재를배향했다.
.대성전은정면3칸, 측면3칸의맛배지붕으로되어있으며, 명륜당은정면4칸, 측면2칸의팔작지붕으로되어있다. 만화루는조선세종4년(1422 년)에건립한것으로이층누각형식이며, 정면3칸, 측면2칸의맞배지붕으로이루어졌다. 1974 년에보수하고1976년에단청을새로이하였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6/8
.만경향교대성전.지정번호: 문화재자료제114호.소재지: 김제시만경면만경리183
.시대: 조선시대.소유자: 향교재단.지정일: 1984 년4월1일.대성전은조선태종7년(1407 년)에만경동헌서편에있는송전리에창건하였으나, 광해군12년(1620 년)에화재로말미암아소실되었으며, 인조15년(1637 년)에현재의동문내리에이전건립하여오늘에이르고있다.
.이곳의배향설위는대성전에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등중국4성과송대6현주돈이,
정명도, 정이천, 소강절, 장횡거, 주회암을배향했고, 동서벽에는우리나라의18현을배향했는데, 동벽에는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주준길서벽에는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를배향했다.
.대성전은정면3칸, 측면2칸의맛배지붕으로되어있으며, 동제와서제는각각정면4칸,
측면2칸의우진각지붕으로되어있다. 이를1971년에보수하였으며, 명륜당은인조15년(1637 년)에창건한것으로정면5칸, 측면2칸의팔작지붕으로되어있으며, 현재는노휴제(老休齊)로사용하고있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6/8
.만경향교대성전.지정번호: 문화재자료제114호.소재지: 김제시만경면만경리183
.시대: 조선시대.소유자: 향교재단.지정일: 1984 년4월1일.대성전은조선태종7년(1407 년)에만경동헌서편에있는송전리에창건하였으나, 광해군12년(1620 년)에화재로말미암아소실되었으며, 인조15년(1637 년)에현재의동문내리에이전건립하여오늘에이르고있다.
.이곳의배향설위는대성전에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등중국4성과송대6현주돈이,
정명도, 정이천, 소강절, 장횡거, 주회암을배향했고, 동서벽에는우리나라의18현을배향했는데, 동벽에는설총,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주준길서벽에는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를배향했다.
.대성전은정면3칸, 측면2칸의맛배지붕으로되어있으며, 동제와서제는각각정면4칸,
측면2칸의우진각지붕으로되어있다. 이를1971년에보수하였으며, 명륜당은인조15년(1637 년)에창건한것으로정면5칸, 측면2칸의팔작지붕으로되어있으며, 현재는노휴제(老休齊)로사용하고있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7/8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7/8
.망해사낙서전.지정번호: 문화재자료제128호.소재지: 김제시진봉면심포리.시대: 조선시대.소유자: 망해사.지정일: 1986 년9월9일.이건물은조선조선조22년(1589 년)에진묵대사(震默大師)가처음으로세웠고, 그후1933년과1977년에중수된것으로알려져있다.
.건물의외형은팔작지붕이며, ㄱ자형으로서앞으로한칸나온부분에는마루가놓여있고, 그뒤에근래에만든종(鍾)이걸려있다. 건물의오른쪽에는방과부엌이딸려있어서원래이낙서전이법당(法堂) 겸요사(寮舍)로쓰여졌음을짐작케한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8/8
.금산교회.지정번호: 문화재자료제136호.소재지: 김제시금산면금산리290-1
.시대: 조선시대.소유자: 금산리이인수.지정일: 1998 년11월27일.금산교회는1908년4월에미국의데이트선교사가이지방의조덕삼, 이자의등과함께건립한ㄱ자형교회건물로서내부구조는잘보존되었으나건물외부는기와및벽체가변형된듯하며현재는방치된상태다.
.내부구조는초대교회의ㄱ자모양으로남쪽에는남자석, 동쪽에는여자석으로나누어져예배를보았으며, 상량문은남자석은한문으로, 여자석에는한글로성결구절이쓰여있으며, 당시는주변의교회중교세가가장컸다고전한다.
.이교회의특징은그당시만하더라도남녀가한자리에서로얼굴을맞댈수없었던까닭에금산교회는이뿌리깊은남녀유별이란과제를ㄱ자형의교회평면을차용한건축해법으로해결했다는점이다.
지방기념물과문화재자료8/8
.금산교회.지정번호: 문화재자료제136호.소재지: 김제시금산면금산리290-1
.시대: 조선시대.소유자: 금산리이인수.지정일: 1998 년11월27일.금산교회는1908년4월에미국의데이트선교사가이지방의조덕삼, 이자의등과함께건립한ㄱ자형교회건물로서내부구조는잘보존되었으나건물외부는기와및벽체가변형된듯하며현재는방치된상태다.
.내부구조는초대교회의ㄱ자모양으로남쪽에는남자석, 동쪽에는여자석으로나누어져예배를보았으며, 상량문은남자석은한문으로, 여자석에는한글로성결구절이쓰여있으며, 당시는주변의교회중교세가가장컸다고전한다.
.이교회의특징은그당시만하더라도남녀가한자리에서로얼굴을맞댈수없었던까닭에금산교회는이뿌리깊은남녀유별이란과제를ㄱ자형의교회평면을차용한건축해법으로해결했다는점이다.
배운내용을정리해봅시다. 1/2 배운내용을정리해봅시다. 1/2
김제의
사적
.
벽골제(사적
제111호)
김제의
천연기념물
.
봉남
동령마을
느티나무
, 성덕마을
왕버드나무
김제의
지방
민속자료
.
벽골제
쌍용
놀이
, 월촌
입석
줄다리기
, 장화동
쌀뒤주
김제의
지방기념물
.
금구산성, 이석정선생생가, 오영순가옥, 남강정사
배운내용을정리해봅시다. 2/2 배운내용을정리해봅시다. 2/2
김제의
무형문화재
.
김제우도농악, 장구제작, 시조창(완제시조
), 향토술담기
김제의
문화재자료
.
금구향교대성전
, 만경향교대성전, 망해사낙서전, 금산교회
김제의
유형문화재
.
귀신사3층석탑
, 귀신사석수, 귀신사부도, 김제내아, 청운사대헤보각선사서
,
조팔달장군
유품
, 안위장군묘, 석정이정직선생유저유묵
, 청룡사관세음보살
좌상, 팔효사은행나무, 목조아마타여래상
, 김제향교대성전
, 김제동헌, 문수
사목조석가여래좌상
, 장태수선생유품
, 문수사마야여래좌상
, 재궁리석등, 김
제전교비
탐구해봅시다. 탐구해봅시다.
문화재의
종류를
조사해
보시오
.
김제의
문화재
종류별로
간단히
이름만
정리해
보시오
.
Key
.www.cein.or.kr
.www.egimje.net
문제를풀어봅시다. 1/3-기초문제문제를풀어봅시다. 1/3-기초문제
1. 다음중김제가보유한사적은무엇인가요?
2. 다음중김제의지방무형문화재가아닌것은?
3. 김제가보유한천연기념물의숫자는?
나. 미륵사지다. 내소사라. 금산사마. 송광사가. 벽골제나. 장구제작다. 시조창(완제시조)
라. 향토술담기마. 귀신사부도가. 김제우도농악가. 10 개나. 8 개다. 6 개라. 4 개마. 2 개
.기초문제
문제를풀어봅시다. 2/3-중급문제문제를풀어봅시다. 2/3-중급문제
1. 다음중김제가보유한천연기념물을찾으시오.
2. 다음중종류가다는문화재를고르시오.
나. 호랑가시나무다. 후박나무라. 동령마을느티나무마. 팔효사은행나무가. 금산사미륵전나. 귀신사부도다. 김제내아라. 김제동헌마. 귀신사대적광전가. 귀신사석수
.중급문제
문제를풀어봅시다. 3/3-고급문제문제를풀어봅시다. 3/3-고급문제
1. 유형문화재와무형문화재의차이점을말하고,김제의지방유형문화재와지방무형문화재를각각3개이상쓰시오.
2. 벽골제의조성연도와지정번호를기록하시오.
.고급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