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속의 단군은 어떤 의미일까?
한국사 속의 단군
단군신화 발생의 시대적 배경
단군신화와 고조선 사회
고조선 이후의 단군
일제시대 기독교의
신사참배 반대
일제시대 에도 이와 유사한 경험
일제, 기독교에 신사참배 강요
강요의 논리 : 신사참배는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
기독교계 상당수가 이에 순응
근본주의자들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탄압받음
이는 현재 독립운동사의 일부로 평가됨
단군, 어떻게 볼 것인가
단군이라는 현상, 일제 식민지 경험이라는 민족의 수난이 낳은 역사적 산물
오늘날 단군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적 내력을 살펴보아야
하지만 현재 다종교 다문화 사회에서 ‘단군’의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할 필요
혈통민족주의를 넘어서 시민적 공동체로
1. 단군 신화 발생의 시대적 배경
원시공동체 사회와 문화
계급과 국가의 발생
고조선의 성립
1) 원시공동체의 사회와 문화
선사시대의 시기구분
현재 남아있는 유물을 기준으로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구분
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로 다시 나눔
구석기시대와 신석시시대 사이에 중석기시대를 두기도 함
이러한 구분은 덴마크의 고고학자 흐리스티안 톰젠(C.J. Thomsen)이 1836년 발표. 이후 통설이 됨
한반도의
구석기 유적지
일제시대에는 한반도의 구석기문화의 존재 부정
그 이유 : 당시 일본에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
일본인의 옹졸한 자존심
1960년대 구석기 유적지 발견: 웅기 굴포리(1963), 공주 석장리(1963)
이후 전국에 걸쳐서 구석기 유적 발견
일본의 구석기 유물
2차대전 전의 통설: 일본열도에는 구석기 문화는 없다
1946년 군마현에서 구석기 유물 최초로 발견
이후 각지에서 구석기 유물 발견
이 과정에서 후지무라의 조작사건 발생
구석기에 목을 메는 이유 : 민족사의 프레임
구석기시대의 사람 1
역포 아이 :
평양시 역포 구역에서 발굴,
13세 정도의 여자아이,
약 10만년 전에 살았던 호모사피엔스
구석기 시대의 사람2
승리산 사람 :
평안북도 덕천군 승리산 동굴에서 발견
35세 정도의 남자로 추정
4만~5만년 전에 살았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구석기 시대의 사람은 우리민족의 조상일까
네안데르탈인 화석과 함께 다수의 현생인류의 화석 발견
하지만 현재 우리 민족의 조상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음
우리 민족은 인류의 이동과정에서 역사적으로 형성
섬나라 일본의 경우도 민족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음
민족의 프레임으로 구석시시대를 보는 것은 무리
구석기시대의 생활
뗀석기 사용
불 사용
수렵 및 채집생활
이동생활
신석기 혁명
신석기 시대, 농경과 목축 시작되다
인류 생활의 혁명적 변화
선사시대의 산업혁명이라고 부르기도
사진은 신석기혁명이란 개념을 만들어낸 영국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
신석기시대의 간석기와 빗살무늬토기
암사동 신석기 유적지
- 씨족 단위의 정착생활을 했음을 보여줌
원시적 종교
샤머니즘 : 무당
토템이즘 : 자신의 종족을 특정 동물과 동일시
애니미즘 : 자연물에 혼령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
사진은 파푸아 뉴기니의 애니미즘 관련 조각. 오른쪽 위에 일종의 神木이 보임
2) 계급과 국가의 발생
청동기 시대의 도래
비파형 동검(왼쪽)과 세형동검(오른쪽)
한반도의 독자적인
청동기문화
기원전 10세기경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청동기문화 출현
비파형 동검(기원전 10세기)과 세형동검(기원전 4세기)으로 대표되는 두 단계의 청동기 문화
사진은 중국식 동검: 자루 부분까지 청동으로 이루어져 있음
농경생활의 본격화
농경은 신석기 시대 후기에 시작되었지만 청동기시대에 본격화
따비, 괭이 등 발달된 경작도구 사용
청동기가 농경에 사용되지는 않음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왼쪽 사진은 농경 장면이 새겨진 제사도구
청동기 시대의
전쟁과 평화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는 목책 해자 망루를 갖춘 자그마한 도시
전쟁이 빈번히 벌어졌음을 보여줌
잉여생산물 발생이 빈번한 전쟁의 원인
국가의 출현 :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조직
초기 국가체를 읍락국가 혹은 읍제국가라고 부름
고인돌의 나라 한국
전 세계 고인돌 가운데 3분의 2가 한국에 있음
청동기 시대의 유물
간돌검 ,청동기, 토기 등 출토; 부족장의 무덤으로 추정
제작을 위해 다수의 인력동원 필요
원시공동체 해체와 계급 발생의 증거
3) 고조선의 성립
기원전 10세기 이후 동아시아 정세
서주- 춘추전국시대- 진한의 통합으로 이어짐
전국시대 획기적인 변화
철제 농기구의 사용으로 생산력 격차
정복전쟁으로 읍제국가에서 영역국가로
진한의 통합- 영역국가에서 제국으로
중심과 주변의 문화적 격차
고조선의 성립
성립시기
삼국유사 : 중국 요임금 50년
동국통감 : 서기전 2333년
고고학적으로는 BC10세기에서 7세기 사이(청동기 문화)
멸망시기
BC 108년 : 한 무제의 침약으로 위만조선 멸망
고조선의 위치
평양설
동국통감의 기록
- 고조선 멸망 후 세워진 낙랑군의 유적지
요동설
민족주의적 시각
다물사상
이동설
유물에 근거(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초기 요동, 후기 평양
2. 단군신화와 고조선 사회
단군신화의 기록
단군신화의 해석
고조선 시대의 사회
1) 단군신화의 기록
일연의 삼국유사
단군신화가 실린 최초의 역사책
1285년 승려 일연이 지음
비슷한 시기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도 다른 버전의 단군 신화가 실림
단군이 재발견된 이유 : 몽골 침략기
• 삼국사기에 단군신화가 빠진 이유
김부식은 동경세력의 리더, 서경세력 묘청과의 정치적 대립
신채호 ‘한국사 1천년래의 일대 사건’(묘청의 난)
단군신화의 내용
옛날에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계시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 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 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그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서 이 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이 분을 환웅 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하였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 환웅)에게 사람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神, 환웅)이 신령한 쑥 한 심지[炷]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기(忌)한 지 삼칠일(三七日)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여자가 된 곰은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 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단군은 요(堯) 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에 옮겼다. 그 곳을 또는 궁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 오백 년 동안 여기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의 무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1천9백8세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2) 단군신화의 해석
단군왕검이란 이름
단군 – 제사장
텡그리 : 샤먼을 뜻하는 몽골어
왕검 – 정치적 군주
임금이란 말을 한자로 음차해서 표현
자연인이 아니라 제정일치 사회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 일반 명사
(참고 : 동국통감의 치세 해석)
환웅과 곰
그리고 호랑이
토템이즘의 흔적
환웅 : 발달된 문명을 가진 유이민 집단
곰과 호랑이: 토착집단
환웅과 곰의 혼인 : 유이민 집단과 토착집단 일부와의 정치적 연합
신단수
애니미즘의 흔적
종교학에서 말하는 우주수(宇宙樹)
사진설명 : 고구려 고분 각저총 벽화의 신단수. 오른편에 그린 모사도를 살펴보면 곰과 호랑이라는 것이 자세히 드러난다. 본래 그림의 신단수에는 검은 새가 날아와 앉아 있는 모습이 확실히 묘사되어 있다.
단군신화, 어떻게 볼 것인가
애니미즘, 토템이즘, 샤머니즘 등 원시 종교에 바탕
청동기 시대 국가의 발생이라고 하는 정치적 변화를 표현
인류의 이동과 문화의 교류가 국가 발생의 촉매가 되었음을 보여줌
단군은 자연인이 아니라 청동기 시대에 있었던 제정일치의 국가체의 수장을 의미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역사적 사실은 아님
3. 고조선 멸망 이후의 단군
삼국시대의 단군
고려시대의 단군
무속신앙에서의 단군
조선시대의 단군과 기자
대종교 - 단군의 재발견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의 진실
북한의 단군릉
삼국시대의 단군
삼국은 각자 독자적인 건국신화
정치적 측면에서 단군신화의 효용은 소멸
민간 전승으로서 단군신화의 내용은 전해진듯
사진은 고구려고분 장천3호분의 수렵도. 왼쪽에 신단수가 그려져 있음
고려시대의 단군
강화도에 참성단이 있는 이유
몽골침략기 피난지
개경시대의 것을 모두 옮겨감
원래의 참성단은 개성 근처에 있었을 것
고려의 三韓一統의식 : 단군이 삼국을 아우르는 한민족의 구심점
조선이라는 나라이름
조선왕조의 기본설계도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단군이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기에 나라를 세움(중국과 대등한 역사)
기자箕子의 망명 및 건국
조선왕조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계승
조선시대의 단군과 기자
기자(箕子)란 : 중국 고전에 은나라의 신하로 주나라에 복종하지 않고 동방으로 건너갔다고 기록된 인물. 충절의 상징으로 유교에서 높이 평가
삼국유사에서도 기자가 동쪽으로 왔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인지 여부는 불투명. 현재 한국사 서술에서도 기자조선을 채택하고 있지 않음
유교를 이념으로 한 조선시대에는 평양에 기자묘를 만들어 숭상함
하지만 동국통감의 서술에서 볼 수 있듯이 단군의 존재도 부정하지 않음
단군기자계승의식 – 혈통적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
1900년대 근대민족주의가 대두하면서 기자계승의식이 탈락됨
구월산 삼성사
일제강점기 황의돈이 지은 중등조선역사의 삽화(구월산 삼성사의 단군 영정)
삼성사三聖祠를 개수하고 제사 의식을 개정하였다. 삼성사는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제사하는 사당으로 문화현 구월산에 있는데, 본도에 명하여 봉심奉審해 개수하게 하고, 친히 제문을 지어 근시近侍를 보내어 치제致祭하였다. <조선왕조실록>정조13년
조선시대의 기자묘(箕子墓)
무속신앙에서의 단군
삼신할미 : 임신과 출산을 주관하는 신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신, 혹은 三聖이라고 하기도 함
삼신은 환인 환웅 단군
무속신앙에서는 단군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뀜
무속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여성으로 바뀐 탓인듯
대종교
단군의 재발견
대종교 : 1909년 중광된 민족종교.
이미 망해버린 왕조 대신에 민족의 정신적 중심으로 단군을 세움
박은식 신채호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상당수가 대종교와 관련
해방 후 대한민국 수립 당시에도 상당한 정신적 영향력 발휘
재야사학의 대표자료환단고기의 진실
재야사학의 근거자료 : 환단고기
1911년 계연수가 <삼성기><단군세기><북부여기><태백일사>를 필사해 한권으로 묶음
1979년 이유립이 영인본으로 발표
내용상 많은 의문점(僞書논쟁)
설사 위서가 아니더라도 이 책의 기록만 가지고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움
북한의 단군릉
1993년 단군릉 발굴보고
유골의 연대측정 결과 5011년 전의 것이라 주장
의문점 :
고구려 양식의 고분(굴식돌방무덤)
연대측정의 신뢰성
연대측정이 맞더라도 단군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단군을 강조하는 이유 :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결 론
단군 신화는 한반도에서의 국가 발생의 정황을 말해주는 자료임
이후 정치적 변동과 외래문화의 도입에 따라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짐
하지만 혈통적 정체성의 연원으로서 역사의 이면에서는 면면히 이어짐
망국을 겪으면서 독립운동의 지주이자 민족의 수호신으로서 부활함
이제 민족의 고난기를 벗어났고 다종교 다문화 사회를 맞이한 오늘날 민족의 사당 안에 단군을 모셔놓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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